고통 없이 진화는 없다지만, 모든 고통이 우리를 키우는 건 아니다

“고통 없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즐겨라.”

며칠 전 뉴스에서 이 문장을 봤다.

어느 재벌가의 장남이 해군 장교로 임관하며 내세운 좌우명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가만히 있어도 편안한 삶이 보장되었을 텐데,

굳이 시민권을 포기하고 39개월의 군 복무를 선택하며 남긴 말이었다.

댓글창에는 대단하다는 칭찬과 가진 자의 여유라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처음엔 살짝 심술이 났다.

돈도 배경도 다 가진 사람이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니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며칠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 생활이 유독 버거웠던 탓일까.

우리가 “고통을 즐겨라”라는 말에 화가 나는 이유

우리가 직장에서 겪는 고통은 대개 예고 없이, 그리고 선택권 없이 찾아온다.

퇴근 직전에 떨어지는 급한 보고서,

기분 따라 기준을 바꾸는 상사,

책임은 피하고 공만 가져가는 사람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들.

이런 상황을 두고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처럼 들린다.

마치 “조금만 더 참아, 네가 더 노력하면 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것은 내가 성장을 위해 선택한 고통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떠안게 된 남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고통과 견뎌내야만 하는 고통은 엄연히 다르다.

나를 진화시키는 고통 vs 나를 소모시키는 고통

그 문장을 곱씹으며 나의 지난 회사 생활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하나는 나를 진화시키는 고통이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프로젝트,

어렵지만 끝내고 나면 분명히 배울 것이 있는 일,

긴장되지만 마치고 나면 “그래도 해보길 잘했다” 싶은 도전들.

이런 고통은 겪을 때는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자존감이 차오른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다는 성장의 감각이 남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소모시키는 고통도 있었다.

사람 사이의 정치질에 휘말려 감정을 다치는 일,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비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일.

이런 고통은 끝나고 나면 성취감이 아니라 깊은 허무함만이 남는다.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질문과 함께 나 자신이 닳아 없어지는 느낌만 든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자주,

나를 갉아먹는 두 번째 고통까지도 “성장을 위해 참아야 한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구분

완벽한 회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고통의 종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고통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가 선택한 도전인가, 아니면 남이 떠넘긴 숙제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건 즐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인내가 아니라, 적절한 선 긋기와 거절이다.

또한 기록해 본다.

이 경험이 지나고 나면 내게 무엇이 남을지. 기술이 남든,

사람 보는 눈이 생기든,

하다못해 “다시는 이렇게 일하지 않겠다”는

기준이라도 남아야 한다.

만약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면,

그건 내 인생에서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할 불필요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배분하는 일이다.

소모적인 고통에 내 모든 힘을 써버리면,

정작 나를 진화시킬 진짜 기회가 왔을 때 쓸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회사 일은 회사 일대로 하되,

퇴근 후 30분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나 글쓰기에 에너지를 남겨두는 것.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할수록,

나는 더욱 회사 밖의 나를 단단하게 키워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내 방식대로

솔직히 나는 아직도 “고통을 즐기라”는 말에는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겠다.

대신 나는 그 말을 내 식대로 바꿔서 마음에 적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내가 진짜 원하는 내 모습에 가까워지는 데 써먹자.”

남이 만들어 놓은 지옥 같은 상황을 성장의 기회라며

억지로 포장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에는

그만큼의 의미와 자부심을 부여해주기로 했다.

안전한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한 뉴스 속 그 사람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도 매일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깎아내릴 것인가,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 기준을 지킬 것인가.

그 작은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나를 진화시키는 고통이 될지,

그저 소모시키는 고통이 될지를 결정한다.

오늘 당신이 겪고 있는 그 힘듦은 어느 쪽인가.

만약 나를 갉아먹는 쪽이라면,

즐기지 않아도 된다. 참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을 성장시키는 연료가 되어야지,

당신을 태워 없애는 불길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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