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첫날, 나는 그들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가 고등학교가 되어 있었다

복직 첫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공기가 달랐다.

“오랜만이야, 몸은 좀 어때?”라는 따뜻한 인사 대신,

여직원들은 무리 지어 무언가 속삭이며 웃고 있었다.

내 옆자리였던 친한 동료는 어느새 저 멀리 자리를 옮겨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황급히 피했다.

그때는 몰랐다. 점심시간, 복도를 지나다 우연히 휴게실 앞을 지나기 전까지는.

“그 사람, 진짜 이기적이지 않아?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비소 섞인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모른 척 지나쳤지만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 귓가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사무실은 거대한 고등학교가 되어 있었구나.

뒷담화라는 이름의 접착제

한 달쯤 조용히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타겟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복직한 남자 동료 한 명이 표적이었다.

일 처리가 답답하다, 성격이 음침하다는 말이 돌았다.

2주쯤 지나자 타겟은 다른 팀 여직원으로 바뀌었다.

일을 왜 저렇게 하냐? 예전에 다른대서도 일로 사고 많이 쳤대.. 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 무리 안에는 미묘한 서열이 존재했고,

누군가를 함께 깎아내리는 행위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공통의 적이 있어야만 뭉치는 집단.

뒷담화는 그들의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종의 접착제였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무리에 속한 사람들도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늘 “내가 자리를 비우면 저 사람들이 내 욕을 하겠지”라는 불안이 깔려 있었다.

초대가 아니라 충성 서약

어느 날, 그 무리의 중심에 있는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씨,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

순간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밥 약속이 아니라 충성 서약을 하라는 초대였다.

저 자리에 끼면 나는 그들의 뒷담화에 고개를 끄덕여야 하고,

함께 누군가를 씹으며 동조해야 한다.

만약 거절한다면? 다음 타겟은 내가 될 것이 뻔했다.

“죄송해요.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나는 거절했다.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무리의 리스트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솔직히 처음엔 두려웠다.

복직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은따가 되는 건 아닐까, 정보에서 소외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나는 우아한 아웃사이더를 선택했다

그날부터 나는 스스로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다.

점심은 혼자 조용히 먹거나 파벌에 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먹었다.

업무 시간에는 철저히 일에만 집중했다.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그저 모니터만 바라봤다.

메신저로는 업무 이야기만 나눴고,

누군가 다가와 “저 사람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뉘앙스를 풍기며 물으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동조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반박하며 정의의 사도가 되려 하지도 않았다.

회식은 최소한만 참여했고, 만약을 대비해 모든 업무는 메일이나 메신저로 기록을 남겼다.

언젠가 그들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깎아내리느라 바빴지만, 나는 그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파벌은 결국 자멸한다

역사를 좋아해서인지 문득 조선 후기의 붕당정치가 떠올랐다.

처음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더니,

나중엔 남인, 북인, 소론, 노론으로 끊임없이 쪼개졌다.

그 끝은 무엇이었나.

서로를 잡아먹으려다 결국 나라 전체가 병들지 않았던가.

파벌은 단기적으로는 강해 보인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뢰가 아닌 혐오로 뭉친 관계는,

공통의 적이 사라지면 결국 내부에서 서로를 물어뜯으며 자멸하기 마련이다.

직장도 똑같다.

저 무리도 1년, 2년이 지나면 해체되거나 또 다른 무리로 쪼개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유통기한 있는 드라마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퇴근한다

요즘 나는 퇴근하면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필사를 한다.

주말에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난다.

그 자리에서는 회사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에서 나는 투명 인간이 아니다.

내 몫의 업무를 제대로 해내고, 밝게 인사하고, 협조 요청이 오면 기꺼이 돕는다.

단지 그들의 막장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을 뿐이다.

가끔 그 무리 중 한 명이 나를 힐끔거린다. “왜 우리한테 안 끼지?”라는 눈빛이다.

나는 그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지나간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퇴근한다.

그들의 드라마는 그들이 알아서 찍게 내버려 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드라마를 찍고 있나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뒷담화 무리에 끼어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가,

아니면 끼지 않으면 타겟이 될까 봐 두려운가.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거리를 두어도 된다.

뒷담화가 시작되면 슬쩍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나는 잘 모르겠어”라고 한 발짝 물러서라.

점심은 가끔 혼자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사적인 이야기는 줄이고 업무적인 예의만 지켜라.

그들의 드라마는 시즌제다.

타겟은 계속 바뀌고, 등장인물도 물갈이된다.

굳이 당신이 그 피곤한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소모되기 위해 출근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도 소음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당신,

당신은 이미 당신 인생의 멋진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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