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이거 오늘까지 해놔야할거같아서 초과 좀 올려도 될까요?”
팀장이 말했다.
“내일 하십쇼.”
딱 그 한 문장. 그 말이 내 하루를 접어버렸다.
나는 월급루팡이 아니다.
병가로 자리를 비웠던 시간만큼, 힘들어서 그만 두려고도 했지만
이 왕이면 더 잘해보려고 했다.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고,
“이제 다시 해보자” 같은 다짐을 여러 번 꺼내 들었다.
매일매일 하루일과 안에 일을 처리하려고했다
어쩌다 보니 초과를 올렸다.
그리고, 내 초과는 반려됐다.
첫번째는 ‘그 일이라면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카톡
두번째는 ‘결제 안함’
세번째는 바로 오늘이다..
그것도 내가 매일같이 초과를 올리는 사람도 아닌데.
급한 일이 들어와서,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더 뻗은 것뿐인데.
아이러니한 건, 내가 수습하고 있는 일들이 애초에 ‘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임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누락된 절차, 비어 있는 문서,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 공백.
그 공백 위로 경영부서의 요청은 또박또박 떨어진다.
시일은 급하고, 담당은 나고, 결과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
그러면 결국 내가 움직인다.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막아놓은 곳에서,
또 사람이 사람답게 처리해보려고 버티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급한 일을 급하게 처리하겠다고 하면 “내일 하십쇼.”
내일로 미루면 “왜 지연됐죠?”
앞뒤가 맞지 않는 회전문 사이에 서서,
나는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서러웠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욕심을 부리나.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건 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 방식의 문제라는 걸.
나는 팀장이 싫다.
정확히 말하면, 저 사람이 상징하는 태도가 싫다.
‘일’이 아니라 ‘사람’을 조절하려는 방식.
급한 불은 꺼야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태도.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그 누군가가 지친다고 말할 권리는 박탈하는 분위기.
그래서 오늘, 내 마음속에 또렷하게 문장이 생겼다.
나는 이 조직과 더 이상 연이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직급이 다르다고 인간의 값이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계속 이런 방식에 익숙해질까 봐 두렵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일 하십쇼” 같은 말을 쉽게 던지는 사람이 될까 봐.
그러면 나는 결국 ‘같은 결’이 된다.
내가 가장 닮고 싶지 않은 결. 인간 같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을 다루는 결.
나는 닮고 싶지 않다.
더 닮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기준,
내가 지키고 싶은 마음,
내가 아직 남겨둔 ‘사람답게 일하기’의 감각을,
이 조직 때문에 잃고 싶지 않다.
오늘 나는 서러웠다.
서러움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경고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더 오래 있으면, 너는 너를 잃을 수 있다.”
그 경고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결국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떠난 뒤에도,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끝까지, 사람을 사람 위에 두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