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있었다
한때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다.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약 6개월간은 정말 미친 척하고 그 원칙들을 회사에서 실천했었다.
먼저 인정하고 제안하기, 거절할 땐 이유와 대안 제시하기, 논쟁을 피하며 질문으로 대화하기.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그토록 권위적이던 상사는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일을 떠넘기던 동료는 미리 양해를 구하며 일정을 조율해 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배마저 나의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었으니까.
그런데 딱 한 사람, 우리 팀의 김 대리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내 뒤에서 험담을 일삼았고, 회의 때마다 내 아이디어를 교묘하게 가로챘으며,
문제가 생기면 귀신같이 책임을 떠넘기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카네기의 모든 방법을 동원했었다.
진심으로 인정하려 했고, 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애썼고,
불필요한 논쟁을 피했다.
호의가 권리가 되는 순간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는 나의 너그러움을 만만함으로 받아들였고,
나의 배려를 호구의 증거로 삼아 더 뻔뻔하게 나를 이용했다.
그날 밤, 나는 카네기의 책을 다시 펼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이 훌륭한 고전에는 치명적인 빈틈이 하나 있었다.
카네기는 관계 맺는 법은 알려주었지만,
포기하는 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엔 내가 잘못 적용한 줄 알고 자책도 많이 했다.
내가 덜 진심이었나, 내가 그를 다 이해하지 못한 걸까 싶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세상엔 정말로 카네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선을 베풀면 그걸 약점으로 잡아 착취하려는 사람,
타인의 고충 따위엔 관심이 없는 사람,
혹은 현재의 불합리한 구조에서 이득을 보고 있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말이다.
1936년의 이론과 2025년의 현실
카네기의 원칙은 기본적인 선의를 가진 사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실의 직장에는 선의가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3개월 동안 김 대리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그것은 관계 개선이 아니라 일방적인 감정 노동일 뿐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선배가 툭 던진 말이 내 머리를 때렸다.
“너 왜 그렇게 김 대리한테 당하고만 있어? 카네기도 좋지. 근데 그 책은 1936년 미국에서 나왔어.
2025년 한국 직장에서 악의를 가진 사람한테까지 그 원칙을 쓰라고 쓴 건 아닐걸?”
그랬다. 카네기는 좋은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법을 알려줬을 뿐,
나쁜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모든 사람을 지키려다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카네기가 말하지 않은 것, 선 긋기
그날 이후 나는 전략을 수정했었다.
카네기 원칙을 버린 게 아니라 적용 대상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권위적이지만 팀을 생각하는 상사나 서툴지만 노력하는 후배 같은 선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카네기 원칙을 적용했다.
하지만 김 대리 같은 악의적인 사람에게는 명확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거절할 때 구구절절한 이유나 대안을 설명하지 않고 건조하게 사실만 남겼다.
구두 지시는 정중히 거절하고 메일이나 메신저로만 소통해 증거를 남겼다.
무엇보다 그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가 변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업무상 필요한 최소한의 접촉만 유지하며 철저히 감정 투자를 멈췄다.
처음엔 내가 너무 냉정한가 싶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편해졌다.
내가 만만한 호구가 아님을 보여주자,
김 대리의 부당한 요구도 거짓말처럼 줄어들기 시작했다.
포기하는 타이밍을 아는 것도 기술이다
전략을 바꾸고 2개월 후,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그 사람이 또다시 내 아이디어를 도용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모아둔 증거 자료를 팀장에게 보고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는 팀장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관계를 개선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고.
그날 나는 배웠다.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이 관계는 안 되겠다고 포기하는 타이밍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술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 노력해도 변화가 없다면,
그 관계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상대가 내 선의를 이용만 한다면 과감히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나를 지키는 것이 가장 먼저다
카네기 책을 덮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그의 원칙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맹신하지는 않는다.
카네기 원칙은 좋은 사람을 더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는 도구이지,
악한 사람을 개과천선시키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가 없다.
어떤 관계는 과감히 포기하고 선을 긋는 것이 나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도 인간관계 때문에 자책하고 있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저 카네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부디 소중한 에너지를 밑 빠진 독에 붓지 말자.
당신의 진심은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쓰기에도 모자라니까.
친절하되 친하지 않게, 정중하되 단호하게.
그것이 카네기가 책에 미처 적지 못한,
내가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진짜 현실의 처세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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