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무 노구치, 만질 수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도시의 둥근 모서리를 더듬으며

문득 도시를 산책하다가 바닥의 단차나 난간의 곡선을 더듬게 될 때가 있다.

손끝에 닿는 그 미세한 경사와 둥근 모서리에서, 나는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그림자를 본다.

조각이 박물관의 받침대 위에서만 숨 쉬던 시절, 그는 조각을 거리의 호흡으로 꺼내왔다.

사람의 발과 손, 아이의 무릎과 웃음이 조각의 표면을 마모시키도록 설계했다.

작품을 보는 대신 함께 살아내는 방법. 노구치는 그 가능성을 놀이터에서, 그리고 빛에서 끝없이 실험했다.

놀이터: 바람이 큐레이터가 되는 곳

노구치의 놀이터 드로잉을 보면 선은 늘 완벽한 직선이 아니다.

약간 비스듬하고, 조금 느슨하다. 그 느슨함이 사람을 불러들인다.

여기 앉아도 돼, 미끄러져도 돼, 넘어져도 괜찮아.

안전 펜스와 통제선을 미학으로 대체한 설계. 언덕은 기하학 형태로 조각되고, 모래는 지형이 된다.

아이들은 작품 제목을 모른 채 제목보다 먼저 작품의 기능을 알아챈다.

뛰고, 구르고, 미끄러지며 조각의 언어를 해독한다.

그때 도시는 잠깐 박물관보다 넓은 전시장이 된다.

관람객은 티켓을 끊지 않고 해가 지기 전까지 압도적인 체류 시간을 쌓는다.

오후의 공원, 둥글게 솟은 인공 언덕의 능선 위에 서서 아이가 멀리 손을 흔드는 장면을 상상한다.

노구치의 놀이터는 늘 바람을 허용한다.

바람은 가장 공정한 큐레이터라서 누구에게도 설명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투명하게 공간을 보여줄 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노구치의 작품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충분함의 기준을 화려함이 아니라 사용과 시간으로 바꿔 놓는다.

아카리(Akari): 빛은 물건이 아니라 상태다

밤이 오면 놀이터는 조용해진다. 그때 다른 노구치가 등장한다.

종이와 대나무, 금속 프레임으로 만든 조명, ‘아카리’다.

한자 그대로 밝고(明) 가벼운(輕) 이 조명을 통해 그는 빛을 물건이 아니라 상태로 다루었다.

아카리는 스위치를 켜는 순간 방을 지배하지 않는다.

대신 방을 부드럽게 재조정한다. 테이블의 거친 질감, 벽의 작은 균열, 사람의 얼굴선.

모든 것이 약간 낮은 볼륨으로, 그러나 더 정확한 위치로 돌아간다.

이 빛은 공장에서 찍어낸 일률적인 빛이 아니다.

손의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는 면이다.

그래서 아카리의 빛은 때로 낡은 지도 같다.

오래된 길들이 겹겹이 보이고, 그 길 위에 지금의 우리가 작은 핀을 꽂는다.

이해보다 이용이 먼저다

공공미술을 논할 때 자주 빠지는 질문이 있다. “이걸 사람들이 이해할까?”

노구치는 그 질문을 이해에서 이용으로 치환했다.

이해는 머리의 노력이고, 이용은 몸의 기억이다.

애써 해설을 읽지 않아도 된다.

언덕을 올라가 보고, 모래를 밟고, 둥근 돌에 잠깐 기대면 그만이다.

어쩌면 ‘좋다’라는 말보다 먼저 나오는 몸의 탄성이 예술의 가장 오래된 언어일지 모른다.

노구치는 그 언어를 믿었다.

그리고 도시에게 그 언어를 말할 광장과 놀이터, 작은 정원과 조명을 선물했다.

기획자의 책상 위로 가져온 노구치

지역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나는 종종 노구치를 떠올린다.

예산표의 숫자 사이, 운영 동선의 화살표 사이, 참여자의 나이대와 체류 시간의 표 사이.

거기에도 조각가의 감각이 필요하다.

선을 조금 더 둥글게, 텍스트를 한 줄 덜어 내고,

손이 닿는 곳에 작은 여유를 남겨 두는 일.

좋은 행사는 대개 무언가를 과하게 더할 때가 아니라 거슬리는 것을 하나 덜어낼 때 탄생하니까.

그 덜어냄이 사람을 초대한다.

그리고 초대된 사람은 스스로 공간을 완성한다.

노구치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하듯이 말이다.

도시를 위한 조각, 사람을 위한 빛

나는 밤마다 아카리의 불을 켠다.

종이 표면에 남은 솜털 같은 그림자,

테이블 귀퉁이에 생긴 타원형의 호수 위에서 오늘의 피로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도시를 위한 조각은 결국 사람에게 되돌려진 공간을 뜻한다.

만질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앉을 수 있는 표면.

그 표면 위에서 우리는 조금 천천히 움직이고, 서로를 더 잘 본다.

노구치가 평생 만든 것은 거대한 상징이 아니라,

사소한 동작을 허락하는 장치들이었다.

아이가 언덕에서 굴러 웃을 때, 어른이 낮은 빛 아래에서 책장을 넘길 때, 도시는 잠깐 완성된다.

오늘의 산책은 여기서 끝낸다.

내일은 다른 공원의 곡선을 찾아, 조금 더 천천히 걸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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